전쟁 중 동물의 잔혹사는 1·2차 세계대전 때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되풀이 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첫 공공 동물원으로 알려진 '창경원'(현재 창경궁)에서도 동물들이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순종이 즉위한 후 창경궁을 크게 훼손시켰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을 창덕궁에 가둔 후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그 옆인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든 뒤,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
이는 황실 권위의 상징은 궁궐을 훼손해 국권을 말살하기 위함이었다.
일제는 동·식물원을 만든다며 전각 60여 채를 파괴했으며, 창경원 '관리' 또한 일본인 사육사들에게 맡겨졌다.
그 후 태평양 전쟁 패전을 앞둔 일본은 사육하던 동물들을 골칫거리로 여겨 무참히 살해했다.
일제시대부터 창경원에 근무했던 故 박영달 사육사(당시 사육사 보조)의 전언에 따르면 "1945년 7월 이왕직(일제 시대 조선 왕실 일을 맡아보던 관청 회계과장 사토는 전 직원을 모아놓고 '오늘밤 사람을 해칠 만한 동물은 모두 죽여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명령이 내려진 후 일본 사육사들은 동물들의 먹이 안에 독약을 넣어 살해했고, 독이 든 사료를 먹지 않는 동물들은 아사시켜버렸다.
한국 표범을 비롯해 사자와 호랑이, 코끼리, 악어 등 총 21종의 38마리 동물들이 그렇게 독살당했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동물들은 6·25 전쟁에서 또 한 차례 수난을 당했다. 1951년 중국군 공세에 부닥쳐 1·4 후퇴를 한 뒤 다시 서울을 수복하고 찾은 창경원의 광경은 처참했다.
옛 창경원 사육사에 따르면 "살아 움직이는 동물은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며, "낙타, 사슴, 얼룩말은 중공군이 도살해 잡아먹은 듯 머리만 남아 있었고 여우와 너구리, 오소리, 삵 등은 굴과 돌 틈에 끼어 죽어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되자 전방의 군인들이 곰과 산양, 노루, 삵 등을 잡아보내며 텅 비어 있던 창경원의 우리를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그 후 창경원의 동물들은 1983년 12월 31일 마지막 관람객을 맞은 후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다.
동물들을 잔혹한 죽음으로 밀어넣는 만행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도 있다. 내전 중인 해외 국가에서는 수많은 동물들이 목숨을 잃고 치명적인 부상으로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다고 한다.
역사는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함께 살아온 동물들의 기억 속에서도 역사는 흐른다. 인간의 오락과 편의 때문에 수많은 동물들이 참혹하게 희생됐지만, 이를 기억하고 반성해야 하는 것도 인간의 몫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