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신문=지미옥 기자] 최근 반려동물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이웃 간 얼굴을 붉히는 일들도 늘고 있다. 예전엔 단순한 말다툼으로 끝났을 일도 점점 민사소송이나 형사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지난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형사상 분쟁에 얽혀 계약 취소나 전과 기록 등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나 이웃 모두 상대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절실하다. 법원 판례는 '공동생활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키우는 쪽이나 이웃들이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바야흐로 '반려동물과 함께 잘 사는 법'을 익혀야 할 때가 됐다.
신모(52·여)씨는 2005년 6월 중순 덩치가 꽤 큰 '도베르만 핀셔' 종 개 한 마리와 함께 서울 관악구의 한 복도식 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2년 계약을 맺고 들어간 집이었다. 도베르만 핀셔는 과거 경찰견·군용견 등 경호견의 역할을 많이 했다.
하지만 입주한 지 한 달 만에 아파트를 관리하는 SH공사로부터 계약 해지와 함께 한 달 안에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신씨의 개가 짖어대 시끄러운 데다 덩치까지 크고 무섭게 생겨 위협을 느낀다는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SH공사는 "가축을 사육함으로써 공동생활에 피해를 주는 경우 임대차계약 해지와 퇴거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아파트 관리 규약 등을 근거로 신씨를 압박했다.
신씨는 "일정한 시간에만 개와 외출하고, 외출 시에도 목줄을 2개나 하는 등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노력을 다했다"며 SH공사에 맞섰다.
신씨가 순순히 집을 비우지 않자 SH공사는 건물명도 소송을 냈고, 법원은 SH공사 손을 들어줬다.
계약서엔 '같은 층 입주민의 과반수가 동의를 하면 개를 키워도 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재판 도중 신씨 편을 든 주민은 소수에 불과했다.
법원은 "'공동생활에 피해를 미치는 경우'에는 애완견의 소음이나 배설물뿐 아니라 이웃 주민이 그 애완견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거나 애완견에 대해 혐오를 느끼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개를 키우겠다는 피고의 권리만큼, 개를 싫어하는 이웃 주민의 권리 또한 존중돼야 한다"며 신씨에게 집을 비우라고 주문했다.
서울 강서구에 살던 또 다른 신모(60·여)씨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 결국 기르던 반려견 4마리를 모두 처분했다. 신씨는 이후 같은 층 세대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고서야 다시 개를 키울 수 있었다.
반려견 때문에 인명 사고가 나 그 주인이 피해를 보상하는 일은 수년 전부터 다반사가 됐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A씨는 2008년 4월 밤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그만 목줄을 놓쳐버렸다.
마침 그 옆을 지나던 박모(58·여)씨가 개한테 다리를 물려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다. 다리엔 심한 흉터도 남았다.
박씨는 A씨를 과실치상죄로 고소하고 법원에는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법원은 A씨의 관리 부주의 책임을 인정해 과실치상죄에 대해선 벌금 300만원을, 민사소송에선 위자료와 치료비 등 총 1천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 성북구의 복도식 아파트에 살며 몰티즈 한 마리를 키우던 전모(54·여)씨도 2006년 현관문을 열어뒀다가 낭패를 봤다.
몰티즈는 작은 애완견이지만 활달하고 종종 사람에게 대들 때도 있다. 복도로 빠져나간 개가 외출하던 이웃집 할머니에게 달려들었고, 이에 놀란 할머니가 뒤로 물러서다 넘어져 골절상을 입었다. 전씨는 피해 할머니에게 450여만원을 배상해야 했다.
물론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만 조심할 일은 아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는 생각에 남의 반려견을 무심코 해코지했다간 전과자가 될 수 있다.
서울 강남의 한 빌라에 살던 최모(73)씨는 지난해 6월 아래층에 사는 한모씨 소유의 포메라니안 종 애완견이 시끄럽게 짖자 개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가 '재물손괴죄'가 적용돼 벌금형 판결을 받았다.
수의사 출신 한두환 변호사는 "동물이 자기를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경우는 정당방위로 면책되겠지만 긴급한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물리적 유형력을 가했다면 처벌 대상이 된다"고 당부했다.
지미옥 기자 jimi@do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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