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팸타임스 김은비 기자] 번역기 하나만 두고 외국인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장면. 공상과학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자, 인류의 오랜 꿈을 대변하는 장면이다. 이 꿈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구글과 네이버, 시스트란 등이 이뤄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완전하지는 않지만)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제는 애완동물 번역기까지 개발 중에 있다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놀랍고, 놀라우면서도 조금은 걱정스럽다.
최근 아마존 소속 소비자 미래학자인 윌리엄 하이엄은 애완동물과 '온전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치가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밝혔다.
물론 애완동물 언어 번역기는 사실 십여 년 전에도 있었다. 지난 2003년, 일본 완구업체 타카라가 강아지용 언어 번역기 '바우링구얼'과 고양이용 '미우링구얼'을 출시했다. 지금 기술에 비춰 보면 부족한 점이 다소 있을 테지만, 당시에는 꽤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된 2010년대 이후로는 모바일 앱을 기반으로 하는 애완동물 번역기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현재는 다수의 기업 및 연구소가 인공지능, 3D프린팅, 뇌파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보다 정교한 동물 언어 번역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작년에는 3D프린터로 출력한 고양이 번역기 캐터박스가 발표됐다. 템테이션스랩이 개발한 캐터박스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분석한 후 모바일 앱으로 전송해 주는 목걸이형 기기다. 예컨대 고양이가 간식을 먹고 있으면 '하나 더 먹어야겠군' 하고 번역해 주는 제품이다. 고양이의 음성과 감정을 분석한 다음, 이어지는 행동과 연관지어 번역을 하는 방식이라, 실제 고양이의 말을 번역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르고 쌍방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색다른 기기다.
강아지의 뇌파를 읽어 번역해 주는 헤드셋형 번역기도 있다. 지난 2013년 12월, 스웨덴 기업 노모어우프가 발표한 이 기기는 강아지의 감정을 바탕으로 뇌 패턴을 분석한 후, '피곤해', '배고파', '재밌어', '누구니?' 등으로 번역해 준다. 아쉽게도 이처럼 단순하고 자주 사용되는 표현만 번역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아지 꼬리 통역기도 있다. 지난 2015년 도그스타라이프에서 개발한 테일톡은 강아지 꼬리에 장착하는 기기인데, 속도와 방향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내장돼 있다. 예컨대 테일톡은 개가 왼쪽으로 꼬리를 흔들면 화가 났음을, 오른쪽으로 흔들면 행복한 상태임을 알려준다. 최근에 개발된 기기답게 테일톡 역시 꼬리 장치에서 생성된 정보를 주인의 스마트폰 앱으로 전송해 준다. 테일톡은 24시간 내내 꼬리의 움직임을 분석한다. 그런 점에서 주인은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 반려견이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주에는 미 북애리조나 대학교의 콘 슬로보드치코프 팀이 강아지/고양이용 번역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인디펜던트>에 실렸다. 슬로보드치코프는 동물이 포식자의 종류와 색깔을 설명할 때 다양한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토대로 번역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슬로보드치코프는 프레리도그의 울음소리를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바 있다.
강아지나 고양이용 번역기만 나온 것은 아니다. 작년 말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교 동물학과 요시 요벨 박사 연구진이 박쥐 언어 번역기를 개발했다는 내용이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됐다. 박쥐 언어 번역기는 먹이, 잠, 잠자리, 짝짓기 등 4가지 주제를 두고 과일박쥐들이 나눴던 음성 1만 5,000개를 분석한 후, 인공지능 컴퓨터에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개발됐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대체로 15~20년을 살고,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70~80세를 산다고 가정하면, 인생의 21~25%를 함께한다. 오랜 시간 함께하지만 때로는 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다. 모니터 앞에 떡하니 앉아 일을 방해하는 고양이라든지, 자기만 두고 갈비를 먹고 왔다고 삐지는 강아지한테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 혹은 '미안해, 대신 간식 줄게'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어 답답한 애견인, 애묘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완성도 있는 동물 언어 번역기가 있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김은비 기자 fam10@pc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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