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민영을 처음 만난 건 유기동물들을 위해 열린 한 자선 바자회장이었다.
15년 만에 찾아온 한파에 체감기온이 영하 20도로 곤두박질쳤던 날, 장민영은 수수한 검은색 점퍼에 화장기 없는 얼굴과 추위 따위 모른다는 표정으로, 바자회를 찾은 손님들에게 씩씩하게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 열정적이면서도 소탈한 모습이 하도 친근하고 예뻐서 자꾸 시선이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2007년 '커피프린스1호점'을 통해 브라운관에 데뷔한 후 어느덧 10년차 연기자가 된 장민영,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은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스튜디오 안에서도 이어졌다.
촬영 며칠 전부터 사진작가와 컨셉을 상의한 그녀는 행어가 가득 찰만큼의 의상들을 직접 공수해왔다. 게다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려동물과의 작업에 스탭들조차 지쳐가고 있었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장시간의 촬영을 이어갔다. 오히려 그녀의 에너지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정신을 다시 차렸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고마웠다. 그리고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이 여배우에게 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궁금해졌다.
얼마 전 반려견을 입양했다고 들었어요.
네, 주인이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 후 병원에 남겨진 강아지를 입양했어요. 치와와인데 이름은 제 돌림자를 따서 민지라고 지었고 울산에 계신 어머니와 함께 있어요. 며칠 전에도 민지 보러 울산에 다녀왔어요.
많은 사랑을 주셔야겠네요. 그동안 유기동물을 위한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해 왔는데 계기가 있나요?
원래부터 동물들을 좋아해서 늘 봉사를 하고 싶었는데 막상 쉽게 되지 않았어요. 그러다 메디포즈동물병원 원장님이 개봉사팀을 소개해주셨고 배다해, 길건, 양선일, 장효인, 안혜경 등 여러 연예인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사료회사인 내추럴발란스의 블루엔젤 봉사단에도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보호소 봉사는 주로 어디로 가나요? 그리고 봉사활동을 할 때 어려운 점은?
일산, 여주, 양주에 있는 보호소에 갑니다. 그리고 어려운 점은 별로 없어요. 단지 여름에 너무 더워서 온몸이 땀에 젖어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에요. 물론 늘 조심하려고 하는 부분은 있어요. 유기견들 중에 학대를 받았던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입질을 해서 다치는 경우가 있거든요. 보호소에 갔을 때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은 만져주지만 그 외에는 일부러 건드리지는 않아요.
유기동물관련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상근이나 산체 같은 스타견공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티비에서 스타견들이 생기면 유행처럼 그 종을 사서 키우다가 막상 크면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티비에서 보던 그런 매력이 떨어지니까요, 산체 이후 장모치와와가 많이 키워졌다가 버려졌다고 들었어요. 하나의 생명인 이 아이들을 물건처럼 다루지 말아주세요. 장난감이 아닙니다. 주인은 동물을 버리고 말지만 정작 동물들은 주인을 못 잊고 있잖아요.
이 밖에도 스타견공들의 경우 관리를 하는 부분에서 안타까워 보이는 점이 많아요. 사람은 아프면 강제로 일을 시키지 않는데 말 못하는 동물들은 그 아이의 컨디션과 관계없이 사람들 앞에 세우잖아요.
작년 동물영화제에서도 한 스타견이 사람들 상대로 포토타임을 갖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문제는 그 스타견이 힘이 없는 노령견이었단 거죠. 마치 노인을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시키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고 보기 안 좋았어요.
이제 연기자로서 장민영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그 동안 각종 CF와 영화,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11년 방송되었던 드라마 '싸인'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도시적인 이미지여서 항상 악역이나 새침때기 같은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싸인'에서 연기한 '이수정'이라는 캐릭터는 완전히 다른 배역이었어요.
연기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역할이었죠?
맞아요. 제가 연기한 이수정은 살인 혐의로 복역하다가 비밀을 안고 죽음을 맞는 역이었는데 짧은 씬 안에 대사 없이 표정과 내면연기를 많이 필요로 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다시 찍었으면 할 정도로 아쉬운 점이 많아요. 데뷔한 지 벌써 10년이지만 임팩트 있는 역할을 한 것이 처음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데뷔 10년... 늦게 핀 꽃이 더 화려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네, 올해는 느낌이 좋아요, 작년에는 긴 휴학 상태였던 서울예대 방송연예학과 학업을 마치느라 바빴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연초에 동물영화 '또 하나의 사랑'을 찍었고 봄에는 영화제에 출품하는 독립장편영화에 출연해요. 해외방송활동 예정도 있고 또 웹드라마와 중국영화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동물영화 '또 하나의 사랑'에선 어떤 역을 맡으셨나요?
악역을 맡았어요. 처음엔 이 역할을 할 배우가 없었는데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사람들 눈에 조금 나쁘게 보이더라도 영화 속 제 역할의 행동이 '나쁘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촬영 중 에피소드가 있나요?
주인공이 줄리라는 리트리버인데 슛 들어가면 캐릭터 상 제가 막 구박을 하다가 컷하면 예뻐해 줬거든요. 많이 헷갈렸을 거예요(웃음). 절 미워할 거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요?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만해도 그냥 유명해지고 싶고 톱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꾸준히 오래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연기를 하셨던 여운계 선생님처럼 멋진 배우가 되고 또 오래 연기하는 연기자가 되겠습니다.
*이날 촬영을 위해 와주신 양평 나빌레라 요크셔테리어 견사의 흰신이와 카논 견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애견신문 최주연 기자 4betterworld@naver.com
사진 이형구 기자(와이낫스튜디오) ynotstudi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