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4대 보컬이자 명곡 '사랑할수록'의 주인공 김재희를 만났다. 인터뷰를 위해 반려견 희망이와 함께 스튜디오를 찾은 김재희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 듯 여전히 젊고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사랑할수록'은 한 시대를 휩쓴 히트곡이지만 대중들은 김재희라는 이름을 선뜻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죽은 형을 대신해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동생이 부활 보컬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아!'하고 떠올릴 만큼 아직도 강한 임팩트를 갖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부활을 떠난 김재희는 그 후 20년간 대중에게서 멀어진 채 홀로 기나긴 심연의 시간을 보냈다. 음악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고통 받던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은 뮤지컬을 통해서였다.
한참 힘들었던 시절 우연인지 필연인지 예수님 같은 스타일을 하고 있었던 그가 외모 덕분에 만난 첫 작품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였고, 그 후 <요셉 어메이징><롤리폴리><남자가 사랑할 때>를 거쳐 2015년 <사랑해 톤즈>에서 그의 삶의 원동력이 된 故이태석 신부를 연기했다.
그렇게 대중 앞에 돌아온 김재희는 20년간 묵혔던 에너지가 폭발하듯 2015년 한 해를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뛰어다녔다.
수십 회에 걸친 자살예방·생명존중 콘서트, 부활 30주년 콘서트, 김재희 밴드 결성, 부동산 경제 티비 '백만장자 머니쇼' 우승, 故김재기 추모 콘서트, 양평군 홍보대사, 히말라야 등정, 사랑해 톤즈 뮤지컬 공연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365일을 채웠다.
정말 바쁜 2015년이었다. 그 중에서도 부활30주년 콘서트가 가장 궁금한데 20년 전 부활 팬을 다시 만난 소감은?
팬분들이 내 모습이 많이 변했는지 못 알아보더라. 그 동안 부활 공연에 한 번도 게스트로 나간 적이 없었고 이번이 처음이었다. 흔치 않은 구경거리였을 것이다(웃음).
사실 20년이란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바로 엊그제 같은 기분이었다. 그 시절에 생각이 멈춰져 있는 느낌? 아마도 그래서 가수들이 잘 안 늙나 보다.
팬들도 그렇다. 추억의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로 타임슬립하듯 돌아가니까.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늙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팬들은 그 시절의 모습을 생각할 테니까. 그래서 내가 도전도 하고 모험도 하고 쉴 틈 없이 움직인 거다.
사실 엄청나게 힘들었던 한 해였다. 에너지 자체가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에너지를 뿜어냈다고나 할까...
부활이란 그룹은 김재희에게 어떤 의미인가?
전에는 항상 가슴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에너지원 또는 부모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한 부모 밑에서 각자의 길을 가는 형제 같은 느낌이다.
생명존중 콘서트, 환경보존푸름콘서트 등 여러 나눔콘서트를 개최했다.
생명존중 콘서트는 2014년 3월부터 시작해서 2년이 채 안됐는데 33회가 됐다. 더 많은 분들에게 생명존중의 의미를 알리기 위해 길거리 버스킹을 하고 있고 수익이 나면 공연을 한 지역 사회복지과에 기부한다.
버스킹, 힘들지 않나?
사실 가수는 잘 준비된 조명과 음향 속에서 빛나길 원한다. 음향이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좋은 공연장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열광하지만 열악한 곳에서 공연을 본 사람들은 감흥을 잘 못 느낀다.
여자가 민낯으로 추리닝 입고 나가는 것과 메이크업을 전문적으로 받고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나가는 것이 같을 수 없듯이 말이다. 버스킹은 그런 걸 다 포기하고 한 공연이다. 생명존중 콘서트라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무대인데 화려한 것만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판단미스를 한 부분도 있다. 사람들이 낮은 곳에 임하면 낮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높은 곳에 있어야 높은 음악이라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보이는 것이 중요한 사회라서 그런가보다.
난 지금 이 사회가 아티스트가 실종된 사회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라는 존재가 없다. 티비에 나오는 요즘 가수들은 남의 노래 부르기에 바쁘다. 남의 노래를 불러야 노래를 잘한다고 한다. 오디션프로그램, 복면 가왕 등을 보라.
가수는 내 노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자극을 줘야 한다. 재활용만 할 게 아니라 계속 새로운 샘물을 퍼줘야 한다. 그런데 가수들이 다 남의 노래 부르기 열풍이고 안 그러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너무나 안타깝다.
생명존중콘서트는 '자살예방'이라는 타이틀이 들어가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 때 내가 자살을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다시 살아보니 길이 열리더라. 사람들에게 그걸 알리고 싶었다.
'자살자'라는 글자 가운데 쉼표만 넣으면 '자, 살자'가 된다. 조금만 바꾸면 살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 된다.
자살을 생각했을 당시에는 앞도 안보이고 꽉 막힌 느낌이었다. 왜 이렇게 되나, 왜 이렇게 끝으로 치닫나 생각했다. 그 당시는 댄스뮤직의 시대였기에 방송에 나갈 수도 없었고, 내게 출연 기회를 줄 '아는' 피디도 없었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그러다보니 술을 마시고 삐뚤어진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내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의 미래와 마음을 생각하고 나니 세상에는 긴 내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구 하나가 여기서 잘못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무섭게 들었고 다시 나를 되돌려 열심히 살게 되었다. 그 때 술을 끊고 산에 올랐다. 히말라야를 두 번 갔는데 산을 오르다보니 마음이 바람처럼 편안해졌다. 힘든 일들도 잠시만 지나면 바람처럼 스쳐 사라지고 편안해져 다시 현재에 충실하게 되더라.
아무리 괴로워도 히말라야 등정은 전문가가 아니고는 힘들 텐데?
원래 10년 정도 한국에서 산을 탔다. 세계적인 등반가 박정헌이 친한 친구다. 그 친구가 산을 권해주고 아웃도어브랜드에서 장비를 지원받다 보니 전국을 돌게 되었다. 조금씩 다져진 것이라고 해야겠다.
덕분에 <다큐멘터리 영상앨범 산 스위스편>도 출연했고 작년에는 에 출연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개 히말라야 토롱을 오르기도 했다.
올 해 굉장히 이색적인 도전을 했다. 창업오디션인 '백만장자 머니쇼'에 출연해 우승했는데 이제 토털 뷰티숍CEO가 되는 건가? 메이크업 실력은 대체 언제 닦은 건가?
사실 메이크업은 내가 다 한다. 공연 다니다보니 메이크업 스텝을 쓰는 돈이 너무 들더라. 그래서 주위 미용하는 친구들에게 배웠다.
그리고 '백만장자 머니쇼'는 메이크업 기술자를 뽑는 게 아니라 토탈 뷰티숍 CEO를 뽑는 것이라 경영 마인드가 중요했다. 첫 회에는 꼴등이다가 마지막에 나의 경영 역량을 인정받아 1등으로 역전했다. 내년 3월경에 뷰티숍을 오픈할 예정이다. 50호점을 론칭하는 뷰티숍에 내가 1호점 CEO가 되는 것이다.
반려견 희망이 얘기를 해달라.
5살짜리 시츄 희망이는 내 희망을 담아서 이름 지었다. '희망이'라고 이름을 불러야 내가 희망이 생긴다고 생각해서 저 아이에게 내 미래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희망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마음이 밝아졌는지 모른다. 얘는 나이가 3살밖에 안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평생을 사는 거다. 그리고 희망이를 한 번도 동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식구다.
어떻게 만나게 됐나?
희망이는 딸 별이가 생일선물로 강아지를 갖고 싶다고 해서 이모가 가정분양을 받아온 아이다. 내게 마치 타이레놀 같은 존재고 같이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게다가 한 번도 사고 친 적이 없다. 그 흔한 대소변 실수를 한 적도 없이 아주 얌전하지만 한 가지 재밌는 건, 누가 초인종 누르면 자기가 손님 맞는다고 짖고 난리가 난다.
그리고 솔직히 밖에 나갔다 새벽에 들어오면 얘만 반겨준다. 딸내미도 들어오면 엄마만 찾는데...(웃음)
안타깝게도 그건 모든 아버지들이 하는 말이다. 딸 이름 별이도 직접 지었나?
별이가 태어났는데 너무 기뻤다. 하지만 그 당시 실업자였기 때문에 눈물이 나더라.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하고... 그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데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별이라 지었다. 한자표기가 안 된다는 점 때문에 장인어른께 한마디 들었지만(웃음).
별이도 희망이도 참 아름다운 이름이다. 연말과 2016 신년 계획은?
연말에는 팬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소규모로 디너쇼를 한다. 산타클로스처럼 내가 선물도 마련할 예정이다.
그리고 2016년에는 자살예방·생명존중 콘서트 내용과 규모를 업그레이드 시킬 예정이다.
이전에는 콘서트에서 희망을 줄만한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은 내가 곡을 쓰고 있다. 뮤지컬처럼 만들려고 한다. 김제동의 톡투유처럼 토크쇼와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희망도 주고, 관객과 소통도 할 수 있는 그런 콘서트가 될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후 사진촬영을 위해 희망이를 품에 안은 김재희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거친 카리스마틱 록스타의 모습을 순식간에 지우고 딸바보 아빠로 변신해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 모습에 따뜻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으며, 넘치는 사랑을 굳이 글이나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애견신문 최주연 기자 4betterworld@naver.com
사진:이형구 기자(와이낫 스튜디오) ynotsudi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