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의외였다.
먼저 외모가 그랬다. 화면보다 한참이나 작은 얼굴, 가녀리지만 육감적인 몸매, 나이를 짐작 못할 꿀피부까지, 이쯤 되면 화면발이 너무 원망스럽겠다 싶었다.
그 다음은 본인 몸집의 두 배는 돼 보이는 남자를 가뿐히 들쳐 업고 들판을 달리는 사진 한 장이 그랬다.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에서 미니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이 가냘픈 여성이 사진 속 인물과 같은 사람인지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봐야만 했다. '터프머더'라는 스포츠에 참가한 모습이라는데 어디서 이토록 터프한 면모가 나오는 건지 신기했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 그녀가 꺼낸 동물보호에 관한 이야기도 그랬다. 그녀는 한국의 유기견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두 가지를 '중성화수술의 필요성과 무분별한 불법 번식이 이루어지는 강아지공장의 근절'이라고 정확하게 짚어 말했다.
'손호영의 누나'로도 유명한 손정민은 지난 1998년부터 유창한 영어실력과 탁월한 진행 솜씨로 각종 연예 프로그램의 리포터와 MC로 활약했으며 SBS 드라마 '올인'과 영화 '환상기담' 등에 출연해 연기자로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다작은 아니더라도 꾸준한 활동을 펼쳤던 그녀가 2012년 드라마 '결혼의 꼼수' 출연을 끝으로 대중들의 시선에서 사라져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 후 약 3년여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시간이란 것이 사람마다 다른 속도겠지만 손정민의 3년은 어떤 시간이었는지 들어봤다.
-미국으로 왜 떠난 것이었나?
1997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잠깐 다녀간단 생각으로 왔었다. 그 후 우연히 VJ를 하게 되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바쁘게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너무 바쁘게 살았다. 충전이 필요했다.
한국은 너무나 도시적인 곳이다. 여름이면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어야하고 친구들과 자연 속에 어우러지는 터프머더(toughmudder) 같은 운동을 해야 하는 내 성격과 잘 맞지 않았다. 많이 지친 마음으로 미국으로 갔다.
-터프머더?
20km에 걸친 군사용 장애물을 통과해 완주하는 경기로 여러 명이 팀을 구성해서 참가한다. 이 경기는 시간을 재서 메달이나 등수를 매기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완주에 의미가 있다. 20개 정도의 험난한 장애물 코스가 있다. 그 중 전기충격와이어를 통과하는 코스도 있는데 그 코스에서 진흙탕에 쓰러지는 참가자들이 많다.
-사진을 보니 굉장하다. 여전사 느낌이다.
내가 외모 때문에 연약할거라고 오해를 많이 받는데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터프한 성격이다. 진흙탕에 구르고 하는 것을 즐긴다. 한국에서도 동생들과 어울려 농구를 같이 하곤 했다. 그런데 그걸 굉장히 신기하게 여기더라. 한국에서는 여자를 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미국 여자들은 터프한 편이다.
-그럼 3년간 미국에서 어떻게 지냈는가?
터프머더 같은 대회도 참가하고, 하프마라톤도 뛰고, 등산도 하면서 나 자신을 충전했다.
일적으로는 광고모델 활동도 하고 단편영화도 찍었다. 모두 다 인맥 없이 나 스스로 오디션을 봐서 따 낸 것들이었다. 처음 캐스팅 되었을 때 기적 같았다. 정말 뿌듯했고 날 뽑아준 사람들도 고마웠다. 큰 역할까지는 못했지만 자신감도 생겼고, 미국에 와서도 결국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내가 하는 일이 틀린 것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몸의 건강도 찾고 마음의 건강도 찾은 것 같다.
그렇다. 건강해져서 돌아온 것이다. 신기하게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행사 섭외전화가 걸려왔다. '정민씨 그 동안 대체 어디 갔었냐'면서... 3년이나 쉬었는데 잊지 않고 말이다. 정말 감사했다.
-정민씨의 최근 소식을 지오디 박준형의 결혼식 하객 사진으로 접했다. 주변에서 본인의 결혼은 언제 하냔 소리도 꽤 들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 이미 20년 동안 듣던 얘기라서 아무 느낌 없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결혼이 인생의 골(목표)이 아니니까. 좀 더 신중하고 싶다.
-반려견 얘기도 궁금하다.
스튜디오에 데려온 하얀 말티즈가 9살 '콩이'다. 동생 호영이가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 콩만큼 작다고 해서 그냥 콩이가 되었다. 물론 호영이가 바빠서 거의 아빠가 키우셨다. 특히 콩이는 반드시 밖에서 대소변을 보기 때문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에 두 번은 꼭 데리고 나가야한다.
콩이가 아빠와 생활했을 때는 조금 심심하게 살았는데 요즘은 내 덕분에 새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어디든 데려간다. 레스토랑도 가고 사람들과의 모임도 자주 데려가고, 애정표현도 많이 해준다.
콩이 말고 미국에 루피라는 8살짜리 토이푸들이 있다. 한국에서 키우다 데려간 아인데, 사실 처음에 충무로 애견샵을 지나다가 쇼윈도우에서 눈이 딱 마주친 어린 강아지였다. 데려가려고 했더니 샵주인이 얘는 싼 강아지라며 자꾸 권하질 않았다. 아마도 곧 죽을 강아지였나 보더라. 집에 데려온 후에도 계속 아팠던 아이를 내가 보살펴 살려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장 많이 함께 했던 아이가 루피다. 지금은 미국에서 이웃 할아버지가 맡아 키워주고 계신다.
-사진 속 루피가 꼭 테디베어처럼 귀엽다.
강아지들 목욕과 미용은 늘 직접 한다. 샵에 미용을 보내면 너무 인형처럼 잘라주는데 난 그런 것 보단 자연스러운 게 좋다. 덥수룩하니 그냥 자연스럽게, 그러다보니 곰돌이인형처럼 되었다.
-루피를 미국에서 키우면서 한국과 비교할만한 것이 있었나?
미국사람들은 개를 참 좋아한다. 캘리포니아의 쇼핑몰에는 가게 앞에 개 물그릇이 대부분 놓여있다. 레스토랑의 경우는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지는 않지만 야외 자리에서는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 어떤 음식점에서는 주문한 것도 아닌데 따로 강아지 밥을 만들어 내오기도 한다.
한 번은 강아지 신발을 신겨 데리고 나갔는데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들이 쳐다보고 난리가 났다. 마치 헐리웃 스타가 지나가듯(웃음).
-강아지 신발이 애들 발건강에 안 좋다고 하던데?
그렇긴 하지만 더운 여름철에 그냥 데리고 나가면 강아지 발바닥이 화상을 입어서 다 까진다. 땅바닥이 굉장히 뜨겁다는 걸 꼭 기억해야한다. 콩이의 경우는 매일 나가서 용변을 보니까 여름엔 꼭 장화를 신겨 나간다.
-콩이와 루피에게 참 세심한 엄마인 것 같다. 정민씨에게 반려견은 어떤 의미인가?
말 그대로 애기, 내 새끼.
-애견인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먼저 중성화 수술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무조건 새끼를 낳아서 아무렇게나 남을 주다보니 강아지들이 넘쳐서 버려지게 된다. 그리고 열악한 여건에서 무분별한 번식이 이루어지는 강아지 공장도 없어져야 한다. 제대로 된 환경에서 귀하게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
장소협조 : 끼 스튜디오/ 헤어 & 메이크업 : NACR'E / 의상협찬 : EVAJUNIE
애견신문 최주연 기자 4betterworl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