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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은하 작가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세상,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최주연 2015-09-21 00:00:00

"단 하나의 생명도 학대하지 않으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인간의 삶은 어느 샌가 고의적으로든 무의적으로든 동물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동물의 희생으로 얻는 많은 것들이 정말 한 생명을 앗아가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내 유익을 위해 한 생명이 받은 고통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면 적어도 그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뷰]  백은하 작가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세상,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인간에 의해 희생당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실과 바늘로 자수 놓듯 화폭에 담아낸 백은하 작가의 개인전 'Worth Doing?' 이 9월12일(토)부터 10월4일(일)까지 갤러리토스트에서 열리고 있다.

백은하 작가는 현대인들의 식탁, 동물실험, 무분별한 개발 속 멸종동물 등 우리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희생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 Worth doing?' 이라는 전시 제목과 같이 '동물의 희생으로 얻는 많은 것들이 정말 한 생명을 앗아가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라고 의문을 던진다.

작품을 통해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전하고, 동물문제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자극제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백은하 작가에게 자신의 작품과 꼭 닮은, 부드럽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들어보았다.

Q 2009년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패션디자인 전공이라 하더라도 자수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흔치 않은 일 같은데?

자수라기보다는 '천과 실로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다. 천과 실이 물감인 셈이다. 특별히 이 소재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내 작품들이 동물의 복지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다소 잔인한 내용을 담기도 하는데, 천과 실이 가지는 따뜻한 특성이 그런 부분을 무마시켜주고 보는 이에게 약간의 시간차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알고, 깊이 생각했으면 하는 취지에서 만든 것인데 보기도 전에 징그러워! 하고 도망가 버리면 안되니까.

또, 천과 실이 가지는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동물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누리는 것들은 너무 편하고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가죽소파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잘 익은 스테이크는 보는 것만으로도 미각을 자극하고, 동물원의 북극곰은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고. 겉으로 보이는 건 좋은 것들뿐이지만 뒤에 가려진 현실은 처참하다. 그런 모순적인 면을 소재와 내용간의 갭을 통해 표현하는 데에도 적합한 것 같다.

[인터뷰]  백은하 작가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세상,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 동물사용백서-뷰티시크릿 천과실 50x38 2015

Q 동물보호에 대한 작품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지만 남다른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반려묘 케로를 키우게 되면서 동물 전반에 대한 관심도 깊어지고, 동물의 행복할 권리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다. 고양이와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고양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다보니, 그들에겐 그들만의 삶이 있다는 게 보였다. 누구의 애완동물이나 소유물로서가 아닌.

다른 동물들을 보아도 그 안에서 케로 얼굴이 보이고, 동물 관련 뉴스를 접하더라도 남의 이야기 같지 않게 느껴지고, 그러다보니 점점 다른 동물들에게도 애틋한 감정이 생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를 비롯한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지구를 독점하고 동물을 물건처럼 대하고 있는 현재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제목인 'Worth Doing?'은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는가?' 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동물의 희생으로 얻는 많은 것들이 정말 한 생명을 앗아가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나 스스로에게 또 보는 이들에게 묻기 위한 작업이다.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은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수만 갈래로 나뉜다. 동물을 소재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나 역시 아직 모순덩어리고, 이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 속에 있는 것 같다.

보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마음속에 일정한 기준이 존재한다. 모피코트 때문에 희생당하는 어린 동물을 보고 불쌍하다고 느낄 수 있는, 구제역 때문에 산채로 파묻히는 돼지들을 보고 끔찍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기준들처럼.

내 작업 과정은 보통 동물, 자연관련 자료나 다큐 등을 통해 접하게 된 동물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옮기는 식이다. 나도 몰랐던 동물들의 숨은 희생이나, 우리가 그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 같은 것들을 점점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스스로의 기준이 조금씩 명확해져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작업을 하다보면 정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 누려왔던 삶의 이면을 알게 된다면, 나를 위해 한 생명이 물건처럼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대감으로, 동물들의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을 통해 얼마만큼 변화하고 실천하느냐 선택하는 것은 보는 이들의 몫이다.

[인터뷰]  백은하 작가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세상,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 백은하 작가의 반려묘 케로

Q 반려묘 케로는 어떤 아이인가?

케로와는 벌써 10년 지기가 되어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지인분이 사정상 키우기 어렵게 된 고양이를 내가 맡게 되면서 시작된 인연이다. 천과 실이 주재료인 내 작품에 털을 한 무더기 묻혀 놓고 달아나기도 하지만, 밤샘 작업을 할 때도 항상 옆을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다.

동물에 대한 관심이 케로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보니,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동물들을 그릴 때 자연스레 케로의 얼굴이 묻어나게 된다. 동물들이 전혀 다른 종이라도 다 비슷비슷한 구석이 있다. 케로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동물들 속에 케로 얼굴이 보인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이 토실토실한 고양이가 내 뮤즈인 셈이다.

Q 작품 이외에 동물보호를 위한 다른 활동이 있는지?

전시를 할 때 단체와 협력하여 상호 홍보를 하거나, 전시수익의 일부를 동물보호를 위해 기부하는 등의 활동을 한 적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작품 활동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Q 앞으로의 작품 활동도 자수형태를 기대하면 되는 것인가?

천과 실은 매우 애정을 갖고 있는 소재라 계속 사용할 것 같다. 하지만 딱히 천과 실이라는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고, 최근작에서는 천과 실을 기본으로 하여 페인팅과 스텐실(판화의 일종) 기법을 곁들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어떤 재료든 필요에 따라 사용할 예정이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내용과의 갭을 표현할 수 있는 따스한 느낌은 계속 유지해 가려고 한다.

[인터뷰]  백은하 작가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세상,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 동물사용백서-빨간코트 천과실 84x63 2015

Q 명문 타마미술대학 대학원(시각디자인전공)을 졸업했는데, 한국에서 받았던 교육과 어떤 점이 달랐나?

학부가 아니라 대학원이라서 비교설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타마에서의 수업은 일단 매우 자율적이었다. 특별한 수업 없이 자율적으로 작업을 하고 한 달에 한번정도 세부 전공별로, 한 학기에 한번은 모든 전공이 모여서 강평회에서 작업을 발표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방향을 잡지 못해 어쩔 줄 몰랐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방식이 학생들마다 개성있고 다양한 결과물이 나오도록 해줬던 것 같다. 또 미술 분야의 특성상 하루에 이만큼, 일주일에 이만큼, 정해진 작업량을 소화한다기보다는 여기저기서 영감을 받다가 생각이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야 비로소 형태를 갖추기도 하고,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밤을 새서 완성하기도 하고 참 유동적이었는데, 수업이 없다는 다소 파격적인 스케쥴이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면도 있었다.

Q 일본 유학시절 동물보호작품에 대한 영감을 받았던 적이 있나?

특별히 일본이라서 동물보호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기적으로 일본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할 때 적극적으로 이런 소재를 그려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자연스레 일본 내의 동물복지 사정에는 관심을 기울였던 것 같다.

특히 일본에서 동물원을 만들 때 관람객의 편의를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의 동선이나 생태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후, 그에 맞춰 관람객의 동선을 만들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  백은하 작가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세상,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 사라져가는것들_ 천위에 혼합기법 120x110 2015

Q 마지막으로 동물보호를 위해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우리 삶은 이미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에 갇혀버린 것 같다. 의식을 하고 있는 사람조차도 피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삶에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은 너무나 많다. 우리가 매일을 살고 있는 이 완벽한 도시도 사실은 어떤 동물의 보금자리였던 곳이지 않은가.

또, '육식' 하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단순히 고기를 먹자, 먹지말자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축산업, 유통업, 외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너무 많은 집단의 이해가 얽힌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개개인에서부터 변화해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 아직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 속에 있는 지금, 누군가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동물을 통해 무언가를 얻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동물의 희생으로 어떤 좋은 것을 취하기 전에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실을 접할 때 우리가 느끼는 미안함과 불편함은 생명을 내어놓은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신선한 계란, 고급스러운 모피, 향기로운 화장품. 동물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세상은 하나같이 긍정적인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계란포장에 부리를 잘린 채 손바닥만한 우리에 갇힌 암탉이 그려져 있다면 그 계란을 아침상에 올리려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 그런 것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돌려 생각해보면, 다른 생명을 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많다. 우리가 조금 더 '사람답게'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해나갔으면 좋겠다.

애견신문 최주연 기자 4betterworl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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