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크림이를 데리고 스튜디오로 들어온 이영진은 미디어에 노출된 이미지보다 훨씬 부드럽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모델용 스모키 메이크업 화보들보다는 화장기 없는 실물이 훨씬 매력적이었으며, 편안한 차림새였지만 '톱모델의 아우라'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고고한 분위기가 배어나왔다.
이런 그녀가 유기견들을 데려와 정성껏 간호하고 교육시켜 새로 입양을 보내는 임시보호를 해왔고 또 유기견들을 위한 기부는 물론 SNS를 통한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배우 이영진이 아니라 인간 이영진에 대해 또 다른 의미의 감탄과 매력을 느끼게 했다.
차우차우 치고는 너무 작은 그녀의 반려견 크림이, '아기는 아닐텐데?'하는 궁금증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크림이는?
4살 된 차우차우로 23kg이다. 생후 3개월경에 지인에게서 데려왔는데 이미 파보장염에 걸려있었다. 병을 견뎌내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렸던 때라 병원에서도 희망을 갖지 않아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회복되고 고비를 넘기기 시작해 10개월 만에 완치가 되었다. 하지만 오랜 병원생활로 성장기를 놓쳐서 그런지 이렇게 작다.
차우차우는 주인에게는 충실하지만 타인에게는 상당히 배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크림이는 순하다, 그래서 작은 개에게 물린 적도 많다, 물려도 가만히 버티고 있어서 억지로 떼어냈더니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수준이다. 단지 요즘 털 빠지는 시기라서 좀 힘들다. 사실 내가 털알러지가 있어서 약을 먹으면서 키우고 있다. 털 빠질 때는 약을 더 자주 먹는다. 물론 무리해서 키운다는 느낌은 없다.
다른 반려견은?
엄마와 함께 미소와 뽀미라는 시츄 두 마리를 더 키우고 있다. 10살 난 미소는 유기견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체력이 약해 피부염을 달고 살았고 지금은 심장병이 있다. 18살 뽀미는 뽀미의 할머니부터 3대째 키우고 있는데 이제 이가 2개만 남았지만 여전히 건강하다. 뽀미 엄마도 20년 넘게 살았는데 아마도 한 가정에서 3대째 같이 계속 살아서 면역력도 좋아져 건강하고 오래 산 것 같다.
유기견 미소는 어떻게 만났나?
다리를 절뚝이며 쓰레기통 뒤지던 아이를 엄마가 발견해 데리고 오셨다. 발견 당시 미소는 이미 한쪽 다리에 괴사가 와서 구더기가 잔뜩 생겨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늘 버려진 유기견들을 데려와 보살피셨다. 마당에는 항상 유기견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유기견들이라 건강 상태가 안 좋아 얼마 후 죽는 애들이 많았고, 어린 마음에 아이들을 그렇게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팠기 때문이다.
반려견 외에 유기견들의 임보를 해왔다고 들었다.
3마리를 임보했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임보를 할 생각이지만 현재는 반려견 미소와 뽀미가 나이가 많고 심장병이 있어서 잠깐 중단한 상태다.
임보는 동물보호소에서 믹스견을 데려온다. 나이가 많거나 믹스견인 경우 입양이 잘 안되기 때문에.
처음 데려온 아이는 교통사고 났었던 믹스견이었다. 데려와서 배변교육, 산책예절, 목욕예절 등을 가르쳤다. 기본적인 것만 교육시켰는데 다행히 지인이 데려갔고 잘 키우고 있다. 쥬얼리 디자이너인 그 지인은 원래는 개를 키우지 않았는데 지금은 유기견 후원을 위한 디자인 작업을 할 만큼 변화했다.
두번째 임보한 아이는 울산보호소에서 데려왔는데 나이도 8살이고 사나워서 보호소 측에서도 입양임보가 안될 거라고 했던 아이다. 분리불안과 심상사상충까지 있어서 치료와 교육 시키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잘 입양 보냈다.
그 다음 데려온 애는 2살 반이었는데 심한 분리불안으로 파양만 8번 된 아이였다. 분리불안을 고치는데 11개월이 걸렸지만 좋은 곳으로 입양갔다. 버릇이 안 좋아 버려진 아이들은 고칠 수 있다,
그리고 난 임보할 때 강아지들의 이름을 사람 이름으로 바꿔준다. 다음에는 사람으로 살라고...사슴같이 예뻐서 미옥 씨, 사랑 많이 받으라고 다미 씨, 8번 파양된 것도 너의 덕이라고 덕이 씨...
예쁜지만 마음이 아픈 이름들이다...아이들 교육은 직접 시키는 것인가?
직접 시킨다. 오랫동안 개를 키우면서 생각한 나의 방법은 사랑을 조금 덜 주는 것이다. 원래도 난 '내 새끼 우쭈쭈'하는 성격이 아니다.
분리불안의 경우 주인이 외출하면 개들이 낑낑거리거나 짖는데 난 일부러 소리 없이 나갔다가 우는 소리가 멈추면 다시 들어오고 하는 것을 반복했다. 나중에는 내가 나가든지 말든지 신경을 안 쓰더라. 그리고 본인이 진정돼야 안아주고 예뻐해 준다는 것을 아이들이 아는 것 같다, 배변교육도 비슷하다. 아이들이 진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입양보다는 파양이 안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교육을 하게 된 것이다.
산책예절은 어떻게 시키는지 궁금하다.
산책할 때 다른 개들을 보면 쫓아가거나, 지나가는 개들이 사나울 때 도망가려고 하는 데 그러지 않고 제 옆에 항상 붙어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다른 개들이 오면 처음엔 관심을 보이고 따라가려고 하는데 그럴 때 내가 목줄을 잡고 주저 앉아버린다. 그러면 애들이 다른 개들이 오면 우선멈춤을 하고 지나간 다음에 가게 되고 그것이 익숙해진 후에는 외면하고 갈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모델은 외로운 직업이라고 하던데 반려견으로 인해 어떤 것을 얻었는지?
가족을 얻은 느낌이다. 집에서 내가 막내인데 새로 막내 동생이 생긴 느낌이랄까. 5년간 독립해서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위경련이 크게 났고 내가 끙끙거리니까 크림이가 내 발을 핥아주었다, 그 아이를 보면서 빨리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아프면 애 약은 누가 주고 누가 산책시키나 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크림이는 패션화보도 많이 찍었다, 워낙 순하고 포즈도 잘 잡지만 흔치 않은 견종이고 또 아픈 사연도 있어서 더 화제가 되었던 것 같다. 크림이가 파보장염으로 아플 때는 촬영장에 같이 다녔다. 시간 맞춰 약을 먹여야했으니까. 엘르티비 프로그램 MC할 때도 양해를 구하고 데리고 다녔다,
반려견과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는지?
장염 극복했을 때 정말 기뻐서 둘이 남해여행을 가서 바닷가를 뛰어놀았다. 그리고 제주도 여행도 했다. 비행기는 크림이가 무게가 있어서 수화물로 가야해서 배편으로 갔다. 차를 타고 완도까지 가서 페리를 탔다. 올레길 위주로 다녔고 오름도 가고 저녁에는 바닷가에서 놀면서 무리하지 않고 즐기는 추억을 만들었다.
내추럴발란스 블루엔젤 봉사단 연예인 홍보대사로 활동중이다. 봉사활동을 자주 가는가?
알러지 때문에 보호소 봉사활동 자체는 무리다. 한두 마리는 감당이 되지만 여러 마리의 경우 약으로 해결이 안될까봐 겁이 난다. 봉사활동에 직접 참여는 못하지만 대신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내 주변의 임시보호하는 분들을 후원하는 편이다. 또한 보호소는 사료보다는 후원금을 보낸다. 사료도 필요하겠지만 보호소에 사는 동물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것들이 있을 테니까 후원금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다른 유기견에 대한 사랑이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인가?
특별한 계기가 아니고 어려서부터 늘 함께 해온 덕분이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들을 접할 때 그 감정이 느껴졌다. 개들이 말은 서로 안하지만 가장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 같다. 눈만 봐도 목마르구나, 산책가고 싶구나, 이런 것들이 다 느껴진다.
몇 년 전 인터뷰에 다이어트 비결로 2시간씩 걷는다고 답하셨던데 아직도 그런가?
사실 2시간씩 걷는 것이 바로 크림이와 산책을 말하는 거였다. 다른 운동은 전혀 안하고 있고 크림이와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 반씩 집 근처 건대를 두 바퀴 정도 돈다. 산책이 우울한 기분을 날리는 데도 최고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영화 데뷔했고 최근에는 봉만대 감독의 '떡국열차'에 출연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출연작 중 가장 가슴에 남는 작품이 있나? 이유는?
두 작품이 있다. '여고괴담'과 '환상속의 그대'.
'여고괴담'은 첫 작품이라서, 그리고 '환상속의 그대'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환상속의 그대'를 통해 만났던 '기옥'역할은 나에게 어지간하면 오지 않는 캐릭터였다. 그렇게 얻은 좋은 기회에 혼신을 다해 감정이입을 했고, 연기의 재미를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배우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여고괴담을 하면서 이 작품만큼 좋은 작품을 내가 또 만날 수 있을까? 좋은 감독님을 또 만날 수 있을까?하면서 10년을 버텼다. 그리고 조금 지칠 때쯤 환상속의 그대를 만났다. 이 영화를 통해 연기가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즐거움을 찾아야하는데 그 전에는 누군가 찾아주기를 바랬던 거 같다,
지금은 내가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법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요즘... 연기가 재밌다!
차기작 예정은?
5월에 크랭크 인하는 영화 '로봇소리'에 출연예정이다. 또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최근에는 5월 중순 발매될 호란의 첫 솔로앨범 <괜찮은 여자>뮤직비디오 촬영을 진행했다. 스마트폰 영화제에서 작품을 같이 한 호란과는 서로 굉장한 팬이고 성격도 잘 맞는 언니 동생 사이다.
2015년 꼭 이루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나?
일 년 단위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하기에 난 하루하루 충실히 살기 위해 노력한다.
배우 이영진과 모델 이영진 둘 다 중요한지만 난 그냥 매 순간 사람 이영진이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결국에는 좋은 모델과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의 도리로 홀로 계신 어머니를 잘 모시고, 또 내가 책임져야할 크림이보다는 오래 살아야한다는 것뿐, 그 외에는 큰 목표가 없다.
인터뷰 내내 느낀 점인데...평소 책을 많이 읽는 것 같다.
책을 좋아한다. 집에 있는 시간엔 티비보다 책이 가깝다. 한 달에 7~8권 정도는 꼭 읽는다.
최근에는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할 것 같아 '주기자의 사법활극', '이창근의 해고일기' 등 좀 더 스펙트럼을 넓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 세월호, 유기동물, 쌍용차 해고자 등이 다 같은 하나의 맥락이고 우리가 책임감을 갖고 관심을 가져야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스스로 이 땅에서 35년을 살아왔으면 이런 사회적인 목소리는 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견신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신문을 보는 분들은 일단 동물을 키우는 분들이실 것이다. 조금 더 눈여겨보고 조금 더 귀 기울이면 아무리 미비한 존재라도 도와줄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조금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동물이 됐건 사람이 됐건 소수자에게 조금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독자분들이 되어주셨으면 한다.
이영진 Who is she?
1998년 하상백 쇼의 모델로 데뷔한 이영진은 이듬해 여고괴담2에서 신비롭고 서늘한 미녀 '시은'역으로 강렬하게 스크린에 등장했다.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자신인상을 수상했으며 그 후 요가학원, 4교시 추리영역, 환상 속의 그대, 고령화 가족 등 17편의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또한 런웨이는 물론이고 각종 화보와 CF, 뮤직비디오, TV드라마 및 패션관련 프로그램 MC까지 두루두루 섭렵하며 패션계를 대표하는 톱모델로서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봉만대 감독의 웹무비 '떡국열차'에 출연해 '설국열차'의 틸다 스윈튼을 패러디한 역을 맡아 팬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중이다.
애견신문 최주연 기자 4betterworld@naver.com/
사진 이형구 기자 ynotstudi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