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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의 천사' 혹은 '등불을 든 천사'로 불리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 간호사로서의 훌륭한 삶만 알고있다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동물을 사랑했던 위인으로서의 삶도 짚어보자.
고양이 무한사랑
나이팅게일은 고양이에 대한 무한 사랑을 펼쳤던 인물이기도 하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나이팅게일은 생전에 "고양이는 인간보다 더 많은 연민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자신이 사랑했던 고양이 '비스마르크(Bismark)'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는데, 비스마르크라는 이름은 음식을 마치 신사처럼 먹는다고 해서 나이팅게일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물론 비스마르크가 식탁에서 사료를 먹었을리 만무하지만 이 간호사는 "(비스마르크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며 치켜세웠다. 비스마르크는 페르시안 수컷고앙이로, 가장 예민하면서도 애정어린 특유의 성향으로 나이팅게일을 사로잡았다.
1942년에 출판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삶(The Life of Florence Nightingale)'에는 그가 이 페르시안 고양이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이들을 "거의 호랑이와 야생동물 같다"고 표현한 것으로 나온다. 이 고양이 가족은 나이팅게일과 벌링턴 호텔에서 같이 생활했는데 호텔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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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과 고양이
1854년 영국과 러시아간 크림 전쟁(Crimean War)이 발발했을 때 당시 부상당한 영국 병사들의 참담한 상황은 뉴스로 전파되며 많은 사람들을 격노케했다. 병사들이 입원해 있는 스쿠타리(Scutari, 현재 터키 이스탄불의 위스퀴다르 지역)내 군사병영이 악취와 환자들의 과잉 현상으로 최악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 정부는 나이팅게일을 비롯한 38명의 여성들을 터키로 보내 현장 의료진들을 돕도록 했다.
그해 11월, 나이팅게일과 동료들은 터키 땅을 밟았다. 특히 그 곳에서 나이팅게일은 거의 쉴 시간 조차 없이 일했는데 밤에도 등을 들고 다니며 아픈 병사들을 체크했다. '등불을 든 천사'라는 수식어는 그의 이런 헌신적인 태도에서 나왔다. 당시 밤에는 쥐들이 들끓었는데 빗자루를 들고다니며 이들을 죽여야하는 상황이었다. 쥐들은 병영에서 활개를 치고 다녔는데 심지어 환자의 머리위에서 여유로이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그에게 가장 도움이 됐던건 바로 한 병사에게서 받은 작은 노란색 고양이였다. 불행히도 이 고양이는 나이팅게일과 영국으로 돌아갈때 배안에서 생명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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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고양이들
나이팅게일은 90년동안의 삶에서 약 60마리의 고양이들을 돌본것으로 추측된다. 한번에 17마리의 고양이를 돌보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알려진 고양이 이름만도 바츠(Barts, 영국 바톨로뮤 병원에서 따온 이름)부터 머프, 팁, 톰, 디즈레일리(벤자민 디즈레일리 영국 전 총리), 글래드스톤(윌리엄 글래드스톤 영국 전 총리) 등 매우 다양하다. '퀴즈(Quiz)'라는 이름의 고양이도 있었는데 나이팅게일이 탄 열차에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던 용감무쌍한 작은 페르시안 새끼 고양이였다. 퀴즈는 부상을 입었지만 생존했다.
1859년 런던에서 출간된 나이팅게일의 간호학 저서에는 "작은 반려동물은 종종 아프거나 만성적인 질병을 앓고 있을때 최고의 친구가 된다"고 평가돼있다. 여기서 위안과 동지애를 제공하는 작은 반려동물은 당연히 고양이를 뜻한다. 당시 고양이는 나이팅게일이 혼자 식사를 할때, 혼자서 잠자리에 들때 항상 주위에서 그와 함께 한 존재였다. 나이팅게일의 이야기를 담은 여러 책에는 항상 고양이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가 일을 할때 고양이가 그의 목에 붙어있었다거나 혹은 그의 사촌이 사망했을 때 한 고양이는 나이팅게일의 목에 팔을 두르며 위로했다고 씌여있다.
그러나 1910년 8월 13일. 나이팅게일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고양이들과도 이별했다. 고양이들에 대한 유서는 따로 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