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바로 옆에서 만난 두 마리의 개. 계측기로 지면의 방사선량을 재어보니 280마이크로시버트, 평소 사람들이 노출되는 방사선량의 약 2000배였다. 이런 환경에 그들은 버려져 있다.'
'잘 지어진 개집에는 이름이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구우타.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였구나. 텅 빈 밥그릇과 물그릇. 아이는 집에 누운 채 죽어서 말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는.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누군가가 키우던 개였을 것이다. 일단 배를 채우라고 사료를 내밀자 입에 대기는 하면서도 자꾸만 내게 기대온다. 배고픔보다 외로움이 컸던가 보다.'
본문에서 발췌한 몇 줄의 글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펴낸곳:책공장더불어)'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오오타 야스스케'가 원전 사고 이후 죽음의 땅이 된 후쿠시마를 기록한 사진집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에 일어난 예상치 못한 재앙은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또 남은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타지를 떠돌게 만들었다. 이런 상상하기 힘든 재해 앞에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그곳에서는 관심에서 벗어난 또 다른 생명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 경계구역으로 지정된 원전 20킬로미터 이내 지역, 사람들의 자취가 사라진 곳에서 굶어죽거나 먹이를 찾아 떠도는 그들은 바로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이었다.
책 속 사진들은 첫 장부터 황량함과 쓸쓸함으로 가득 차있다. 먹이를 주려 했지만 그것보다 먼저 쓰다듬어 달라는 듯 몸을 기대어 오는 강아지는 배고픔보다는 그리움이 고팠고, 죽어 쓰러진 친구를 바라보는 축사의 말은 큰 눈 가득 물기가 어려 있었다.
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가족을 기다리는 강아지 사진과 줄에 묶인 채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듯 영원히 잠든 동물들 그리고 저자의 모습을 보고 일제히 울어대는 소들의 모습은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 아픔이 배어났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사고 앞에 아무 것도 모른 채 희생된 수많은 동물들이 그곳에 있었다. 작가의 카메라를 "왜?"라고 묻듯 바라보는 동물들에게 이 비극의 책임이 누구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인가.
고양이와 사는 반려인인 저자는 하나의 생명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사고 직후 후쿠시마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느 언론도 이 비극을 보도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냥 있다가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카메라를 들었다. 그렇게 기록된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2년, 어느 새 망각 속으로 사라져가는 사고 현장을 다시 일깨움으로써 원전에 대한 위험성을 다시 알리고 잊혀진 동물들을 기억하게 했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내가 후쿠시마에서 느낀 것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물뿐만 아니라, 땅도, 집도, 벚나무도 모두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동물들 뿐 아니라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서로를 찾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책 말미에 쓴 글처럼 함께 외친다.
"살아있기만 해주렴."
작가 소개
오오타 야스스케
1958년생. 포토그래퍼 어시스턴트를 거쳐 편집 프로덕션에 카메라맨으로 입사했다. 1991부터 프리랜서 카메라맨으로 활동했다. 1980~1990년대에는 카메라맨으로 아프카니스탄,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 등의 분쟁지대를 다니며 촬영했다. 북한, 중국 중남해지구, 대만 원자력발전소 등을 잠입취재했다. 일본사진가협회(JSP)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