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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대, 문화성숙의 미흡함인가? 과대 반응인가?

최근 동물학대에 관한 보도가 자주 공중파 방송과 종합 언론에 비쳐지고 있다.

그 중 반려동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개(반려견)에 대한 학대 사건의 경우는 그 대응 역시도 만만치 않다. 부분적으로 흩어져 있는 동물보호단체들도 동물학대에 대해서는 매우 강력하게 규탄하고 대응한다.

사실, 동물학대는 과거부터 자행되어 왔었다. 과거에는 그것이 동물학대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동물은 인간이 부리고, 이용하는 하나의 생명이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그에 따라 의식도 많이 성장하면서 과거 '고기'라는 식(喰)의 일부로만 간주하던 사고는 점차 동물로 확산됐고 후에는 동물의 생명도 존중해야 한다는 주의가 깊어지고 있다. 그러한 생명 존중에 대한 확산은 많은 동물보호단체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각 동물보호단체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동물복지가 사회적으로 성장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동물의 생명에 대한 의식을 전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동물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동물 박애주의(博愛主義)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함에 있어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인간우월주의를 벗어나 '생명체'라는 점과 '고통을 느낀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이는 일차적인 직관적인 사고가 아닌 문화적인 사고로 연결되어 동물학대는 곧 문화적인 성숙의 미흡함으로도 연관을 시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대반응이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인간이 만들어왔고,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동물에 대한 부분까지 심하게 간섭하는 것은 지나친 과대 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동물학대라는 단어에 대한 용어부터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으며 단지, 동물은 동물이고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 필요에 따라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동물이기에 지나치게 혐오스럽게 죽이거나 너무 잔인한 고통은 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는 깔려 있다. 특히, 개에 대한 부분은 더욱 예민하게 작용하는데 다른 동물은 되고 개는 먹으면 안 된다는 것에 민감하다. 그들은 동물은 같이 취급을 해야지 개만 특별한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실제 동물보호단체들 역시도 그에 대한 명확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과거 부모님 시대에 비하면 여러모로 풍족한 삶과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 역시 지구상에 있는 하나의 동물에 불과한 종족이다. 사고하고 깨우친다는 것,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 누려야 할 특혜나 특권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잘 살게 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삶이 나아지고 의식이 성장하면 그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이것 저것 잡아먹어야 했던 불행했던 과거를 전통이니 문화니 하는 허울로 뒤집어씌우지 말고 하나의 동물이라도 양육강식(弱肉强食)의 굴레에서 벗겨주는 것도 성장된 문화속에 사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경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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