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발생하고 난 후의 문제들은 평소 그 사회가 드러내지 않는 가장 취약한 부분을 알려준다.
지난 2019년, 강원도 고성에서 이례적인 대형 산불로 많은 재산과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반려인과 함께 대피하지 못한 개를 포함해 소·닭·염소·사슴 등 축사에 갇힌 동물들 또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피하지 못한 채 온몸으로 받아냈다.
이에 집에 묶여있거나 갇혀 있던 동물들이 거대한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문제가 됐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집중호우 역시 사람뿐 아니라 반려동물, 가축까지 물폭탄 피해를 맞으면서 이러한 문제들은 더욱 커졌다.
포항 지진, 고성 산불, 전국 집중호우 등 최근 몇 년 사이 재난을 잇달아 겪으면서 재해재난 시 반려동물을 위한 보호대책 방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나라 반려동물은 재난 현장에 남겨지거나 대피소에 함께 들어가지 못하는 재난 구호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국민재난안전포털의 '애완동물 재난대처법'에 따르면“가족 재난 계획에 동물을 포함시키라”고 권하고 있으면서도 "반려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하라"는 조건이 붙는다.
현재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이나 재해구호법 또한 동물 관련 내용이 없으며, 동물보호법에도 재난 시 반려동물 보호 관련 규정이 없는 등 법적근거가 전무한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겪은 이후 '반려동물 대피와 이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지난 2005년 미국에서 카트리나가 발생했을 때 당시 반려동물의 대피소 출입이 허용되지 않아 "반려동물을 두고 대피하라"는 구조 대원들의 권유를 따르지 못한 사람들이 대피하지 못해 사망에 이르렀다.
이에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가족' 또는 '공동체' 단위 재난 대응의 필요성을 인지한 미국 연방 정부는 2006년 '반려동물 대피와 운송 기준법'(PETS Act)을 통과시켰으며, 현재 30개 이상의 주 정부가 재난 발생 시 동물의 대피·구조·보호 및 회복을 제공하는 법이나 계획을 갖고 있다.
이에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은 "동물이 안전하지 않은 이상 사람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며, "동물 구조, 대피부터 피해 현황 파악까지 개인이 아닌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의 상황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피소 내 동물 동반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물보호'는 그 사회가 모든 생명을 존중한다는 성숙도의 잣대가 될 뿐더러 약자를 보호한다는 사회복지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우리나라 정부도 인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