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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없는 여행...코로나시대에 여행이 주는 의미와 성찰

코로나19로 인해 육지와 바다 그리고 하늘까지 전세계의 모든 길이 막혀 버렸다. 마치 시계가 어느날 갑자기 멈춘 것처럼 잘 돌아가던 세상이 순간 정지해버린 느낌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특히, 여행의 경우는 자유로운 이동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욱 떠나고 싶어한다. 그동안 특별한 제약 없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즐긴 이들은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연일 뉴스에서 볼 수 있듯 코로나19 이전의 여행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코로나시대에는 어떤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정답은 마고 캐런의 '여행 없는 여행'이란 여행에세이집에 나와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수많은 여행책이 아니다. 사진도 몇장 없고 지도나 친절한 관광지 안내글도 없다. 

'여행 없는 여행'은 코로나시대 이전의 여행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해 작가의 성찰적 기록으로 돌아보는 여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20년 이상 60여 개국을 몇 차례씩 여행자로, 관광 마케터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여행이 삶이고 삶이 곧 여행이었던 천생 ‘여행자’ 정체성으로 살아온 여행가다. 코로나19가 정지시킨 시간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작가는 ‘나는 왜 떠났는가’를 질문하며 내면으로의 사유여행을 시작한다. 지나간 여행의 시간들이 옛날필름 돌리듯 빼곡히 흘러가고, 작가는 서울 지하철이나 아침에 눈 뜬 침대 위, 혹은 교외의 낯선 카페에 앉아 그때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20년 동안 세계를 여행하며 느낀 단상과 성찰 그리고 자신의 아픔과 기쁨까지 들려준다. 

작가는 여행을 하며 본명보다 더 친숙해진 캐런의 이름으로 '여행 없는 여행'을 썼다. 캐런은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 놓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단짝 친구와 함께 한적한 외국의 시골풍경을 보는 것 같다. 

사람마다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떠나고 누군가는 쉼을 위해, 깨달음을 위해, 그리고 누군가는 도망치기 위해 떠난다. 작가 캐런은 20대 첫사랑의 아픔으로 도피성 해외여행을 시작했다.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떠난 여행이었기에 찾아가는 곳은 주로 세상의 절벽 같은 장소들이었다. 사막, 빙하의 섬, 대초원, 겨울 설산, 캐니언들. 압도적인 대자연 앞에서 자신의 절망을 마주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명상을 배우고, 돌아오면 또 다시 떠날 계획을 세웠다. 오십 문턱에서 건강에 이상이 와 당장 수술날짜를 잡으라는 진단을 받고서도 가장 먼저 한 일이 다음 여행티켓을 예약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캐런은 떠나는 행위에 매달렸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여행이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여행지에서 습관처럼 돌을 고르듯 지난 여행의 의미들을 고르며 글을 쓰다보니 책에는 그의 여행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었던 인도, 독일, 아이슬란드 세 나라의 이야기가 주로 실렸다. 그러나 그것은 여행 이야기라기보다 여행의 역사를 통해 성장해온 한 개인의 이야기라 해야 할 것이다. 그의 글 뒤로 수많은 여행지 풍경들이 생생하게 그려지긴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 자꾸 문밖세상으로 달아나” 새로운 것에 부딪치고 무너지고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해온 한 삶의 분투가 읽혀진다.

거기엔 길 위의 가르침을 주었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담도 담겨 있다. 갠지스강변에서 만난 구루와 아쉬람의 요기들, 몽골 대초원에서 같이 말을 달리고 사막을 건너 함께 가축들에게 물을 주러 갔던 파파와 그의 가족들, ‘지구 에너지’에 관해 처음으로 들려주었던 불가리아 젊은 커플과 세도나에서 만난 노부부, 자신들은 채식주의자임에도 손수 고기반찬에 맛있는 집밥을 차려주었던 인도 델리대학교 남학생들, 와인농장 견학 후 쾌속의 아우토반 드라이브까지 시켜 주셨던 70대 백발의 독일 할아버지 등이 손에 잡힐 듯 또렷하다. 

지난 여행에 대한 많은 기억을 품고 이제 작가는 ‘떠나는 사람에서 머무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여행은 떠난다는 의미에서 보면 이동이고 머문다는 의미에서 보면 공간이다.”라는 책 속의 한 문장은 여행자 캐런의 달라진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돌아보면 여행지에서 캐런은 언제나 이동하는 여행자였지 체류자는 아니었다. 1박은 아쉽고 3박은 지루하다 느꼈던 그에게 몇 해 전부터 유행한 ‘한 달 살기’는 그리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마지막 세계여행이 된 두 번째 아이슬란드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국에 혼자 정착할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20여 년간 그토록 걸어 다니며 눈에 담았던 지구촌의 모든 풍경들이 압축적으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나라 아이슬란드에서 역설적으로 그는 “더 이상의 이유 없는 세계여행은 끝내”기로 마음먹는다.

작가는 이제 달리는 서울 지하철 안에서, 아침에 일어나 밤새 눈 쌓인 창틀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식사와 나른한 한잔 술을 준비하다가, 혹은 교외의 낯선 카페에 앉아서도 쉽게 여행자의 감각을 불러낼 수 있다. “모든 여행은 각자의 마음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러므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상도 여행자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코로나시대의 대한민국에서 매일같이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여행 없는 여행'을 쓰면서 생각했다. 여행을 멈추었을 때도 행복할 수 있는 여행이 진짜 여행이라는 것을. 흔히들 행복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그러나 당신이 향하는 그 어느 곳에도, 당신이 보려고 한 그 무엇에도, 찾고 있는 행복은 없을 것이다. 다니다 보니 행복은 인간의 욕망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지금 상태 그대로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어떤 여행도 텅 빈 공터를 배회하는 기분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지은이 마고캐런 Mago Karen 

캐런은 여행을 하며 오랫동안 사용해온 이름이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한국인도 발음하기 쉽지 않아서 이제는 이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많다. 1971년생.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고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영어 통역가이드 자격증을 따고 여행업에 종사하다가 20대 첫사랑의 아픔으로 도피성 해외여행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20년 이상 여행가 이자 관광 마케터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열정적으로 일하다가 60개국 세계 일주를 몇 번씩 해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고 ‘여행 없는 여행자’로 살 것을 선언하듯 이 책을 썼다. 현재 서울과 순창에 자기만의 공간을 꾸리고 ‘정주하는 여행자’ ‘일상을 여행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으며, 그동안 다녔던 세계여행 이야기를 글로 써서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다. 현대인의 여가와 문화생활에 관심이 많아 서울 이대역 부근에서 여행갤러리 겸 테마카페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최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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