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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키워드] 남영동 대공분실, 영화 '남영동 1985'&'1987' 배경...'고문 수준 어땠길래'
임채령 기자
수정일 2018-12-26 11:22
등록일 2018-12-26 11:22
▲남영동 대공분실이 주목을 받고 있다(출처=연합뉴스 TV 방송화면 캡처)

80년대 악명높았던 고문 장소인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 하자 남영동 고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26일 행정안전부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 이관식'을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관식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납니다'라는 주제로,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안부 장관, 민갑룡 경찰청장 등 정부 인사와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피해자, 희생자 유가족, 민주인권기념관 건립위원회 위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과거 군사정권 고문 장소로 악명이 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경찰청에서 행안부로 관리권을 이관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보존되는데 행안부는 관계부처 및 시민사회와 협조해 이곳을 역사적으로 기억하고 미래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잔혹함을 보여준 영화 '남영동 1985'(출처=영화 '남영동 1985' 포스터)

남영동 대공분실은 세운상가 등 유명 현대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으로 1976년 10월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지어진 뒤 1985년 고 김근태 전 의원 고문사건으로 국외 언론과 인권단체에 그 실체가 알려졌다. 비밀 수사와 고문에 최적화된 장소라는 평가를 받는데, 민주화운동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억울하게 붙잡혀 눈이 가려진 채 이 계단을 돌아 올라가는 동안 방향감각을 잃고 공포감이 극대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이곳은 1987년 학생 신분으로 민주화 운동을 하던 박종철 열사를 경찰이 가두고 물고문 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박종철 열사가 1987년 1월 14일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 숨지자 당시 경찰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발표로 고문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주목을 받았던 영화 1987(출처=영화 '1987' 캡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개봉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이 열풍을 일으키면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국민청원운동이 본격화되고 있었는데 박종철기념사업회는 "가해자인 경찰이 남영분실을 운영하는 건 맞지 않다. 박 열사의 뜻을 기리는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배우는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1987'이 인기를 끌면서 '남영동 1985'도 주목을 받았는데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에서 민주화운동가 김종태가 군부 정권에 의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영화의 원작인 故김근태 의원의 자서전 '남영동'에도 고문 장면이 상세히 적혀있다. 김 의원은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 고문이 잘되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왔다"라고 설명했다.

[팸타임스=임채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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